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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 로봇

노인 돌봄 로봇의 보조기기 등재를 위한 법률 개정안

by ssunday1824 2025. 7. 4.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약 22%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에 따라 노인 돌봄 수요는 폭증하고 있으며, 정부는 장기요양보험 제도, 치매안심센터 확대,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대응해오고 있다.
하지만 돌봄 인력 부족, 지역 간 서비스 격차, 만성질환 증가 등의 현실은 인력 중심의 돌봄 구조로는 더 이상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AI 기반의 노인 돌봄 로봇이다. 돌봄 로봇은 약 복용 알림, 낙상 감지, 인지 자극, 정서 교감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기계이면서도 사람을 대신하지 않고 돕는 ‘디지털 보조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 돌봄 로봇의 보조기기 등재

 

그러나 현실에서는 돌봄 로봇을 공공 재정으로 지원하거나 복지 수급 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돌봄 로봇이 '공식 보조기기'로 법률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보조기기 관련 법령이나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법 어디에도 돌봄 로봇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돌봄 로봇의 공공 보조기기 등재의 필요성, 현재 법률 구조의 문제점, 해외 입법 사례, 그리고 한국에서 필요한 법률 개정안의 방향과 핵심 조항 제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왜 노인 돌봄 로봇은 법률상 보조기기로 인정되지 않는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조기기’(assistive device)의 정의와 지원은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보조기기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법은 장애인 및 노인을 위한 일상생활 보조 수단을 국가가 지원하고,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법에서 보조기기의 정의는 “신체 기능 저하로 일상생활이 곤란한 사람의 기능 향상 또는 생활 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한 기기”로 되어 있으며, 시행령에서는 구체적인 보조기기 품목이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휠체어, 보행기, 의사소통기기, 욕창 예방 매트, 점자정보단말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재 노인 돌봄 로봇은 이 보조기기 품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복합 기능으로 인해 분류가 애매하다
    노인 돌봄 로봇은 이동 보조, 의사소통, 정서 교감, 건강관리, 인지훈련 등 여러 기능을 혼합하고 있어, 기존 품목체계로는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기 어렵다.
  2. 기술 변화 속도에 비해 법령 개정 속도가 느리다
    보조기기법 시행령의 품목 고시는 수년에 한 번씩만 개정되며, 빠르게 진화하는 AI 기반 기기들은 그 사이 법령상 사각지대에 머무르게 된다.
  3. 로봇은 ‘의료기기’나 ‘가전제품’으로 오해된다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돌봄 로봇을 아직 ‘복지 장비’보다는 일반 가전기기나 연구개발 대상 기기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공공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적 재정을 통해 노인 돌봄 로봇을 지원하거나 보험 급여에 포함시키는 데 있어, 법적 정체성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노인 돌봄 로봇 보조기기 등재를 위한 해외 입법 사례

돌봄 로봇이 제도적으로 ‘보조기기’로 인정받는 국가는 아직 많지 않지만, 몇몇 복지 선진국에서는 관련 법령을 개정하거나, 보조기기 분류 체계를 유연하게 확장하는 방식으로 기술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 – 복지용구(福祉用具) 지원법
일본은 고령자 복지를 위한 장비를 ‘복지용구’로 정의하며, 개호보험법 하위법령을 통해 매년 복지기기 품목을 업데이트한다.
예를 들어, 2022년에는 낙상 방지 기능이 포함된 감시형 로봇, 치매 예방 대화형 로봇 등이 ‘개호보험 보조 대상 복지용구’로 신규 등재되었으며, 국가 보조금 및 보험 적용이 가능해졌다.

독일 – 사회법 제11권(SGB XI) 및 의료기기법
독일은 장기요양보험에서 보조기기를 ‘Pflegehilfsmittel’로 정의하며, 해당 품목은 연방건강보험청에서 규정한다. 2021년부터 일부 스마트기기 및 AI 기반 돌봄 기기들이 시범적으로 보험 급여 항목으로 등재되었다.
특히 건강 상태 모니터링 로봇과 의사-환자 중개용 로봇은 디지털 헬스케어 법령(Digital Healthcare Act)과 연동해 급여 등재가 진행되었다.

네덜란드 – 보조기기 통합법(WMO)
네덜란드는 각 지자체가 보조기기를 규정하고 지원하는 구조로, 유연한 보급 정책을 운영한다. 고령자 친화 기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지역 공공복지재단이 돌봄 로봇을 보조기기 품목으로 직접 채택하고 있으며, 임대 방식으로 지원 중이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법령상 ‘보조기기’의 정의를 기술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AI 기반 기기를 실증을 통해 보조기기로 인정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준한 법제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형 법률 개정안 제안: 핵심 조항과 방향

 

한국에서 돌봄 로봇을 법률상 보조기기로 등재하기 위해 필요한 개정안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될 수 있다.

 

① 보조기기법 시행령 개정: 품목 추가

  • 현행 시행령 별표1(노인용 보조기기)에 ‘AI 기반 돌봄 보조기기’를 추가
  • 예: “음성 인식 기능과 감정 교감 기능을 포함한 생활지원형 인공지능 로봇”, “인지기능 자극 및 정서 지원 기능을 갖춘 반응형 디지털 기기”
  • 보조기기 등재 심의위원회를 통해 기기별 성능, 안전성, 효과성 평가 기준 마련

② 장기요양법 시행규칙 개정: 서비스 수급 항목 확대

  • 장기요양급여의 범위(시행규칙 제3조)에 ‘디지털 보조기기를 통한 일상생활 지원’ 항목 신설
  • “공단이 인정한 기술 기반 보조기기 사용 시, 해당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장기요양급여로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 추가

③ 건강보험법 시행령 또는 복지부 고시 개정

  • 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에 ‘디지털 보조기기’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급여 등재 신청 절차를 단축
  • 시범 급여 또는 조건부 급여 적용 후, 보건복지부 고시로 정식 등재 전환 가능하도록 구조화

추진 방향 요약:

  • 정의 확대: 보조기기 개념을 ‘전통적 물리기기’에서 ‘디지털 기반 보조 기술’로 확장
  • 기준 수립: 안전성·효과성·비용효율성 중심의 인증 체계 도입
  • 제도 연계: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복지기금 등 다양한 공공재정과 연동될 수 있도록 조항 정비

이러한 법령 개정이 이루어지면, 돌봄 로봇은 단순 소비재가 아닌 공공 보조기기이자 정책적 복지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실질적 입법 추진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기반 마련

법률 개정은 기술 개발만으로는 추진할 수 없다.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의 협의, 제도적 명분 확보, 재정계획 등이 함께 설계되어야 실제 작동 가능한 입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현실적 전략이 필요하다.

 

입법 로드맵 수립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고령사회위원회 등과 협력하여 ‘돌봄 로봇 보조기기 등재 관련 입법추진단’ 구성
  • 관련 법령 3개(보조기기법, 장기요양법, 건강보험법) 간의 충돌 여부 사전 검토

실증 데이터 제공 및 정책 제안서 제출

  • 지자체 및 복지기관에서의 로봇 사용 사례(치매예방 효과, 낙상 사고 감소율 등)를 정량화한 실증자료로 제출
  • 국회 입법조사처 또는 복지부 산하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정책자료집·법률안 초안 제출

예산 시뮬레이션 및 단계적 적용 전략 병행

  • 로봇 등재 시 연간 재정 부담 분석 → 고위험군, 저소득층 중심의 선별 적용안 마련
  • 보조금+임대료 지원+보험 급여 분산 지원 모델 제안

④ 시민 인식 제고와 윤리적 검토 병행

  • 돌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임을 강조
  • 인권침해, 사생활 침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사용 지침,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 마련

이처럼 기술, 제도, 인식, 예산이 함께 설계된 ‘입체적 입법 접근’이 있을 때에만, 노인 돌봄 로봇은 실제로 제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복지 기술의 확산은 법에서부터 시작된다

노인 돌봄 로봇은 이제 단순한 시제품이 아니다. 이미 전국 지자체와 요양시설에서 수천 대가 실사용되고 있으며, 수급자와 보호자 모두로부터 효용성과 만족도를 인정받고 있는 복지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보편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에서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기기 등재는 단지 품목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복지의 정의를 확장하고, 기술을 제도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며, 고령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준비하는 일이다.
기술은 앞서 있다. 문제는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기술에 맞는 법을 만들 차례다. 돌봄 로봇의 법률적 지위 확보는 고령사회의 새로운 복지 표준을 만드는 첫 번째 입법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