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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 로봇

유럽 복지국가에서 노인 돌봄 로봇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by ssunday1824 2025. 7. 3.

유럽 복지국가들은 전통적으로 국가 주도의 돌봄 시스템을 강조해 왔다. 특히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들은 노인을 위한 공공 돌봄 서비스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돌봄 노동을 전문직으로 존중해왔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이들 국가조차 급속한 고령화와 돌봄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AI 기반 돌봄 로봇의 시스템적 활용이다.

 

유럽 복지국가에서 노인 돌봄 로봇

 

유럽은 한국보다 로봇 기술 자체는 뒤처질 수 있으나, 사회보장 시스템 내에서 기술을 복지 정책의 일부로 통합하는 데 훨씬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특히 EU 차원의 공동 프로젝트인 AAL(Active Assisted Living)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돌봄 기술 개발과 표준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미 여러 국가에서 돌봄 로봇이 장기요양보험, 재가복지 서비스, 병원 시스템과 연계되어 일상적인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대표적인 유럽 복지국가인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를 중심으로 이들이 돌봄 로봇을 어떻게 도입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각국의 정책 방향과 특징, 그리고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함께 살펴본다.

 

독일: 돌봄 노동 보호와 로봇 기술의 병행 전략

독일은 유럽에서 고령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를 넘었다. 장기요양보험(Pflegeversicherung)을 통해 노인의 일상생활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독일은, 인력 부족과 돌봄 품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 돌봄 로봇을 보조 수단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연방보건부(BMG)와 프라운호퍼 연구소, 산업체가 협력하여 개발한 ‘Garmi’ 프로젝트다. 이 로봇은 노인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심박수나 혈압 데이터를 기록하며, 화상으로 의사와 연결해주는 기능까지 수행한다. 독일은 이 로봇을 재가 요양 대상자요양시설 입소자 모두에게 실험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연방정부 차원에서 로봇 구매 및 유지보수 비용 일부를 보험 재정으로 지원하는 시범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돌봄 로봇 도입에 있어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사회보장과 노동권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돌봄 로봇이 단순히 ‘인건비 절감용’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로봇 사용 지침, 노동자 대체 제한 조건 등을 명시해두고 있다.
이는 로봇을 돌봄 시스템 안에 안전하게 통합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모델로, 한국처럼 인력 중심 복지 구조를 가진 나라에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스웨덴과 덴마크: 고립 예방과 독립생활 지원 중심의 기술 활용

스웨덴과 덴마크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북유럽형 복지국가 모델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인들의 ‘독립된 생활(Independent Living)’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돌봄 로봇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두 나라 모두 AI 기반 반려 로봇, 말벗 로봇, 커뮤니케이션 보조 기기를 고령자 가정에 배치해왔으며, 특히 덴마크는 치매 초기 단계 노인을 위한 로봇 보조 시스템을 적극 운영 중이다.

덴마크 정부는 2016년부터 ‘테크케어(TechCare)’ 프로젝트를 통해 돌봄 로봇, 스마트 가전, 웨어러블 기기를 통합한 복지 솔루션을 시범 운영해 왔으며, 2023년부터는 국가 예산으로 65세 이상 고위험군 독거노인에게 로봇 임대비용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로봇들은 단순한 음성 대화뿐 아니라, 기상 알림, 약 복용 알림, 가족과의 화상 통화 기능, 정서적 안정 콘텐츠 제공 등을 수행하며, 요양보호사의 업무를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스웨덴은 노인 우울증 예방과 고독사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텔레노어(Telenor)’가 개발한 AI 돌봄 로봇 ‘엘라(Ella)’는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분석해, 필요한 경우 지역 사회복지사나 심리 상담사에게 자동으로 경고를 보내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이들 국가는 기술을 단순히 효율화 수단으로 보지 않고, 복지 가치의 확장 수단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로봇은 고령자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로 정의된다.

 

네덜란드: 지역기반 스마트 케어의 중심축으로 로봇 도입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스마트 헬스케어 시스템을 고령자 복지에 통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이들은 돌봄 로봇을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디지털 복지망에 연결함으로써, 로봇-사람-의료시스템이 상호작용하는 통합 모델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Zora Bots’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로봇이 단지 가정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요양시설, 복지센터, 병원과 연계된 네트워크 안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 연동 및 관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령자의 활동량이 급격히 줄거나 감정 분석 알고리즘상 우울감이 지속될 경우, 로봇이 해당 정보를 지역 보건소와 가족에게 전송하여 선제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네덜란드는 로봇 도입에 따른 서비스 품질 인증 체계를 만들어, 로봇의 기능·안정성·효과성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고, 보험 급여 수준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을 도입 중이다. 이로 인해 서비스 표준화와 비용 효율성 확보가 가능해졌고, 복지기관의 로봇 구매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

네덜란드의 돌봄 로봇 정책은 기술을 인프라가 아닌 ‘서비스 체계의 일환’으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다. 이는 한국처럼 로봇과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제도화와 서비스화가 느린 국가에 참고할 만한 선진 모델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기술보다 제도가 먼저 준비되어야

유럽 복지국가들의 돌봄 로봇 활용 사례는 단순히 기술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 체계 안에서 로봇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보건의료 시스템과의 연계, 정서적 돌봄의 확장, 디지털 포용성 확대, 기기 품질 인증 및 재정 지원 체계를 함께 설계하고 있다.

한국은 로봇 기술력과 ICT 인프라에서 세계적 수준에 있지만, 제도적 수용성과 행정 통합성에서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도 유럽처럼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돌봄 로봇 정책을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 장기요양보험과 돌봄 로봇의 통합 시스템 마련
  • 지자체와 지역복지기관 중심의 로봇 서비스 연계 플랫폼 구축
  • 감정 인식, 낙상 감지, 치매 예방 등 기능별 인증 체계 도입
  • 고령자 대상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사회적 인식 개선

유럽 복지국가들의 사례는 분명히 말해준다. 돌봄 로봇은 기술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이 기술을 사람 중심의 제도 안에 녹여낼 것인가, 그것이 진짜 복지국가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노인 돌봄 로봇: 복지를 위한 기술, 사람을 위한 제도가 답이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돌봄 로봇을 ‘첨단 기술’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로봇을 복지 시스템의 한 부분, 더 정확히는 사람이 사람을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돕는 보조자로 정의한다.
독일은 노동권과의 균형을, 스웨덴과 덴마크는 정서적 돌봄을, 네덜란드는 서비스 시스템과의 통합을 추구하면서, 기술을 단지 효율성이 아닌 인간 중심 복지의 확장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돌봄 로봇을 실험의 대상이 아닌 복지의 기본 인프라로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술이 앞서 있는 만큼, 이제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야 할 때다. 사람을 위한 기술은 반드시 사람 중심의 제도 위에서만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