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는 전국적인 문제지만, 돌봄 로봇의 도입은 지자체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5년 현재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으며, 이에 따른 노인 돌봄 수요는 전국 어디서나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대응은 아직 실험적이고, 법제화도 진행 중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과 예산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돌봄 로봇 보급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부 광역자치단체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로봇 시스템을 독거노인 가정에 배치하고 있으며, 특정 기초지자체는 치매예방, 정서돌봄, 낙상 감지 등 기능별 특화 로봇을 실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지역마다 내용과 범위, 실행 방식이 달라 정책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이번 글에서는 돌봄 로봇 도입이 활발한 대표 지자체인 서울, 부산, 전라북도,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정책 방향, 로봇 유형, 대상자 선정 기준, 예산 구조 등을 비교 분석하며, 한국형 돌봄 로봇 정책의 균형 발전을 위한 시사점을 정리해본다.
서울특별시: 정서 중심 노인 돌봄 로봇 ‘효돌’ 보급 확대
서울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AI 돌봄 로봇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선도 지자체 중 하나다. 2021년부터 서울시는 고독사 예방 및 정서적 돌봄을 위한 로봇 ‘효돌’을 시범적으로 도입했으며, 초기에는 1,000대 수준으로 시작해 2024년까지 누적 3,200대 이상을 독거노인 가정에 보급했다.
서울시의 돌봄 로봇 정책은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고립 해소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하루 일과 알림 (기상, 식사, 약 복용 등)
- 날씨, 뉴스 안내
- 음성 대화 및 간단한 퀴즈, 노래
- 보호자와의 통화 연결 기능
- 긴급 시 SOS 호출 및 응급 알림
서울시는 자치구별 노인복지관과 협력해 수요 조사와 대상자 선정 절차를 표준화했으며, 지자체 예산 70% + 민간 기부 30% 형태의 복합 예산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서울시가 돌봄 로봇을 단순 기기 보급이 아닌 디지털 돌봄 서비스 인프라의 일부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각 로봇은 서버와 연동되어, 사용 패턴 데이터를 통해 노인의 정서 상태와 생활 변화를 분석하고, 복지 담당자가 필요 시 개입할 수 있도록 연계된다.
서울시의 사례는 돌봄 로봇을 통해 ‘수요자 맞춤형 정서돌봄 복지’로의 전환을 시도한 모범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지속 가능한 예산 기반이 부족하고, 자치구 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부산광역시: 스마트홈 연계형 융합 모델 개발 중
부산시는 서울보다 다소 늦게 돌봄 로봇을 도입했지만, ‘돌봄 로봇+스마트홈’ 통합 시스템 개발에 있어서는 전국에서 가장 선도적인 실험을 진행 중이다. 부산시는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 특성과 고령자 주거환경의 열악함을 고려해, 낙상 감지·조명 자동화·가전 제어 기능을 탑재한 복합 로봇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2023년부터 진행된 ‘AI 돌봄 융합형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이다. 이 사업에서는 단순 로봇 보급이 아니라, 고령자 가정에 감지 센서, 자동 조명, 가전 제어 IoT 시스템과 함께 대화형 로봇을 패키지로 제공한다. 로봇은 사용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분석해 야간 이동 시 자동으로 조명을 켜거나, 장시간 움직임이 없으면 응급 알림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부산의 정책은 기기 중심 접근이 아니라 ‘환경 중심의 돌봄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대상자 선정도 단순한 연령 기준이 아니라, 고위험군 독거노인, 기저질환자, 치매 고위험군 등 정량적 평가 기반으로 진행된다. 예산은 중앙정부 시범 지원금 + 부산시 자체 재정 + 지역 사회복지재단 후원 등 다중 재원 구조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부산의 경우 기술이 고도화되어 있는 만큼 단가가 높아, 실제 보급률은 서울에 비해 낮은 편이다. 또한 시민 체감도가 낮은 고기능 로봇에 대해 비용 대비 효과성 논란이 일고 있어, 향후 기술의 ‘보편성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치매 예방 중심의 인지 훈련 로봇에 주력
전라북도는 인구 밀집도가 낮고 고령화가 빠른 지역 특성상, 돌봄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따라 전북도는 치매 예방과 인지 기능 유지에 특화된 돌봄 로봇 모델을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했다.
대표적으로 익산시, 전주시, 군산시 등에서는 ‘인지훈련 특화 로봇’(예: 실벗, 몬스터큐브 개발형 로봇 등)을 활용한 실증 사업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로봇들은 단순한 대화나 감성 교감 기능보다는, 그림 맞추기, 단어 기억 게임, 음악 퀴즈, 회상 대화 등 치매 예방에 특화된 콘텐츠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보건소·치매안심센터와 협업하여 정기적인 평가와 훈련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전북도는 지자체 재원만으로 운영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보건복지부와의 매칭 펀드 방식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역 내 대학, 로봇 개발사, 복지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공-민간-학계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전북형 돌봄 로봇 정책의 장점은 치매라는 구체적 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의료적 접근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반면에 정서 돌봄이나 응급 상황 대응 등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어, 종합 돌봄으로서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단점도 존재한다.
경상북도: 취약지역 중심, 범도민 참여형 실험 확대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지역 중 하나로, 농촌·산간 지역이 많은 특성상 재택 돌봄이 사실상 불가능한 취약지역이 많다. 이에 따라 경상북도는 지역 보건소 및 농어촌 마을을 중심으로 한 로봇 돌봄 실험을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공공 커뮤니티 기반 운영 모델을 확대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산시와 안동시에서는 AI 돌봄 로봇을 복지이장 및 마을자원봉사자와 연계하여, 로봇 사용 현황을 체크하고 응급 알림 시 현장 확인을 도울 수 있도록 한 ‘지역 자율 대응 체계’를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로봇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응급 대처 및 유지관리 문제를 지역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보완한 사례다.
또한 경북도는 ‘돌봄 로봇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고령자에게 로봇 사용법을 교육하고, 디지털 소외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스마트 복지 교실도 확대 중이다. 이처럼 단순 보급을 넘어, 수용성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주민 맞춤형 전략이 눈에 띄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경북의 과제는 예산 확보와 기술 인프라 부족이다. 전국 평균보다 인터넷 보급률과 디지털 기기 활용률이 낮은 편이라, 로봇 도입 이후의 활용률과 만족도에서 편차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향후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전방위적 정책 연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자체별 실험은 다양하지만,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지자체별 돌봄 로봇 정책은 지역 특성과 인구 구조, 예산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은 정서 중심, 부산은 스마트홈 통합형, 전북은 인지훈련 특화, 경북은 공동체 연계형 모델로 차별화되고 있다.
이러한 실험은 지방정부의 창의성과 현장 대응력을 보여주는 긍정적 사례이지만, 동시에 전국적 불균형과 정책 중복, 예산 낭비의 우려도 함께 안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돌봄 로봇 보급 표준모델을 제시하고, 장기요양보험 연계, 법제화, 품질 인증 기준, 유지보수 체계 등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지자체의 실험은 소중하지만, 지속 가능성과 형평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술은 각 지역에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한 복지라는 본질은 모두에게 동일해야 한다. 로봇은 결국 사람을 보조하는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가 전국 모든 노인에게 공평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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